소설

눈 녹듯

#시기 2020. 1. 1. 17:24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달빛의 조각처럼 내리는 날 밤이었다. 온통 너로 채워져있던 거리는 어느새 찬바람만이 쉬어가는 쉼터가 되어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 홀로 서서 지나간 사랑을 되뇌어 본다. 눈 위에 찍힌 내 발자국은 어디서부터 시작 됐을까. 소복하게 눈이 깔린 내 마음에 어느샌가 네가 들어와 발자국을 남기는 것처럼 사랑은 꾸준히 흔적을 남기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곱고 아름다웠던 그 눈이 잔인하게 녹아버릴 줄은 몰랐다. 처음부터 없었던 일인 마냥 눈이 녹듯 사랑도, 추억도 모두 녹아내리고 애처롭게 남아있는 물방울만이 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릴 뿐이었다.
어느덧 내 발은 너의 집 앞에 도착해있었다. 꺼져있는 불과 굳게 닫힌 문이 이제는 내가 너의 곁에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암묵적으로 말 해주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시렸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도 흩날리는 눈 속에서 나는, 녹아 없어진 우리의 흔적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