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Memento mori)
타자기 앞에서 빈 종이와 눈싸움을 하고 있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져만 가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애써 모른 척하려고 했다는 걸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삼일이 되고, 세월이 담처럼 쌓이고 쌓여 어느덧 1년을 지나가고 있었다. 1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글을 쓰기 위해 타자기 앞에 앉았다. 그게 끝이었다. 여기서 더 무엇을 해봤자 커피를 한 잔 끓여 마신다던가, 도무지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식힐 겸 서가에 박혀서 책을 읽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날마다 오늘은 꼭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타자기에 뻗은 손은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버리고 마니까. 무언가를 적어야 벌어먹는 팔자에서 한 글자도 적지 못 하고 있다는 건 작가로서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나는 이 분야에서 철저히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는 일종의 신호였다.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어야 할 내 종이는 1년이 넘도록 여전히 비어있는 상태였다. 빈 종이는 나를 서서히 옥죄어오고 있었다. 숨이 막혀오는 기분까지 더 해져 나는 완전히 글을 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대로 계속 글을 쓸 수 없게 된다면 내가 살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가 사라지고 만다. 나는 유서라도 한 장 작성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평소 단골이던 펍에서 나는 스트롱 에일 힉스를 한 잔을 마시면서 아무 생각 없이 커다란 티브이에 나오고 있는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펍의 사람들은 저마다 응원하는 팀에 목소리를 높이며 즐겁게 경기를 봤다. 분위기가 열띤 가운데 한편에서 소리도 없이 혼자 술을 마시는 내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사장이 기네스를 한 잔 가지고 내 옆에 앉았다.
"얼마 만에 비추는 얼굴인가? 하마터면 잊을 뻔했어."
"이봐 우드, 오늘따라 맥주가 쓴 맛이 강하군."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얼마 남지 않은 힉스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보다도 자네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우드는 가볍게 웃으면서도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조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런 우드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정말 사랑했어."
마저 남은 힉스를 한 입에 들이키자 말린 과일향이 씁쓸한 맛과 같이 입 속에서 천천히 녹아들었다. 나는 바텐더에게 똑같은 걸로 한 잔 더 주문했다. 축구를 보고 있던 바텐더가 귀찮음이 역력한 표정으로 새 잔에 맥주를 따랐다.
"그런데 이제는 글을 쓸 수가 없어. 한 글자도 생각해낼 수가 없게 되었어."
나는 슬픔과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맥주잔을 봤다. 곧이어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아무래도 응원하는 팀이 득점을 한 모양이었다.
"사람의 머리는 언제까지나 계속 영감을 뱉어낼 수 없는 노릇이지. 나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건 정말 피곤한 일이야."
우드는 자신의 머리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이며 기네스를 홀짝였다.
"위로의 말 고맙지만, 1년이 넘도록 현재 진행형인 상태야."
1년이란 시간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우드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우리는 어떤 말도 없이 잔을 부딪히고 맥주를 마셨다. 내가 마시는 이 맥주가 어쩌면 마지막 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스쳐 지나갔다. 때문일까 조금 더 천천히 공들여서 마셨다. 6%의 알코올이 뇌를 조금씩 적시는 기분이 들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라는 제목의 영화가 머릿속에서 상영하기 시작했다. 아무 보잘것없는 내게 있어서 글은 어둠 속에서의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작가를 갈망했고, 늦은 나이지만 책 한 권을 출판한 작가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수입이 시원치는 않아도,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아도 작가의 신분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점 하나에 감사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떤가? 기가 막힌 생각이 나 글을 쓰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작가라는 사람이 빈 종이에게 무서움을 느끼고 있는 아이러니한 병이 생겨버렸다. 빈 종이만 보면 막막하고 아득한 감정이 내 안에서 요동쳤다. 빨리 무엇인가 써서 채워 넣어야 하는 압박감이 나를 더 짓눌렀다. 여기서 나는 절규한다. 내 삶은 끝이 났다고. 어느덧 두 번째 맥주 잔도 서서히 비우고 있었다. 남은 맥주량이 이렇게나 슬퍼 보였던 적은 오늘이 처음일 것이다.
"내 생각에는 자네가 너무 일에 쫓기듯이 살아온 탓이 큰 거 같네."
"우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비록 글을 쓰는 손이 멈춰도 머리는 쉬지 못했을 거야. 이 참에 자네에게 휴식을 부여하는 게 어떤가?"
우드의 진심 어린 조언에는 틀린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머리를 싸매고 빈 종이를 노려보며 얼어붙은 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것은 나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다 줬다. 우드의 말대로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놓아줄 필요가 있었다. 나를 구속하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우드는 내가 비운 잔을 눈으로 가리키며 느긋한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잔에 담긴 술을 비워야 다른 술로 채울 수 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야."
#2
아침 이른 시간 강의 풍경은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강물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고, 하얗게 피어오른 물안개는 산의 풍경과 어우러져 천국에 강이 흐르고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까 하고 감탄을 자아내었다. 낚시를 하기 위한 적절한 장소를 고르던 중 한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보다 더 이른 시간부터 있었다는 얘기인데 참 부지런한 노인이구나 생각했다. 낚싯대를 하나 놓아둔 채 그저 강만을 바라보는 노인의 뒷모습을 훔쳤다. 그 뒷모습은 왠지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증거의 역할을 하는 거 같아 무척이나 커 보였다. 나는 이끌리다시피 노인의 옆자리에 낚싯대를 두었다. 미끼를 끼운 후 낚싯대를 크게 휘둘러 강물에 빠뜨리는 소리가 정적의 흐름을 비집고 들어섰다. 나는 물고기가 잡힐 때까지 책을 읽으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책의 첫 장을 펼치자 노인의 움직임이 눈에 밟혔다. 아무래도 물고기가 잡힌 모양이었다. 노인은 미끼를 물고 세상 밖으로 나온 물고기를 다시 강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미끼를 끼운 낚싯바늘을 강물에 던지고는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나는 잡은 물고기를 놓아줄 거 낚시를 대체 왜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신경 끄고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시간이 흐르고 한 권의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놀랍게도 내 낚싯대는 어떠한 미동 조차 하지 않았다. 터가 좋지 않아서일까?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마음먹기 무섭게 낚싯대가 흔들렸다. 나는 오랜 기다림 끝에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릴을 감았다. 하지만 팽팽했던 낙싯줄이 너무나도 느슨하게 감겨오자 물고기가 미끼만 먹고 달아났음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미끼만 쏙 빠진 낚싯바늘이 올라왔다. 그 사이에 노인은 또 한 마리를 잡아 올렸다. 제법 살집이 많이 오른 물고기였다. 그런데 노인은 또다시 그 물고기를 강으로 돌려보냈다. 참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른께서는 왜 잡은 물고기를 자꾸만 돌려보내는지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낚싯바늘에 새로운 미끼를 끼우며 노인한테 물었다. 노인은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죽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살아있는 순간일세. 그건 인간에게나 물고기에게나 마찬가지이지."
그 말을 들은 나는 한동안 벙쪄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한 신선한 충격이 가슴속에서 서서히 번져갔다. 그리고 내 안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이 애들도 깨달았을 거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지만 감사함을 느끼며 아등바등 살아나가기 위해 더 넓은 바다를 향해 헤엄쳐나가겠지."
노인이 말을 하던 중 나 낚싯대에도 드디어 한 마리의 물고기가 잡혔다. 왜소한 몸집의 물고기가 있는 힘껏 몸부림치는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봤다. 이 작은 생명도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작가로서의 삶도, 희망도 모두 끝났다고 마음대로 종지부 찍은 나 자신이 이 물고기 보다도 한 없이 더 작아 보여 부끄러웠다. 나는 옆에 있는 노인처럼 물고기를 다시 강에 풀어주었다.
"잠시였지만 신세 많이 졌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길 바라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나는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고요한 아침의 강을 떠났다.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이 글은 내가 겪고 느낀 것을 적은, 일종의 자아성찰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글이다. 나는 내 삶이 부정당한 거 같던 그때에 대해 적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가 빈 종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빈 종이이게 백기를 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백기라고 말하지 않겠다. 이건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반환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일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살 것이며, 언젠가 내 목숨이 다 해 땅에 묻히는 날까지 잊지 않으려고 한다. 이 글의 제목인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는 것', '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아라.'의 뜻을 품고 있다는 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건 살아가면서 중요한 일이라는 걸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조금 다르게 말을 하고 싶다. 반드시 죽게 되는 삶이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죽음은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하길 바란다. 그리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대하길 바란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오늘날까지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