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꽃이 피는 하늘 아래서
#시기
2019. 11. 10. 19:19
축제엔 먹을 게 빠지면 섭섭하단다. 저녁을 먹고 나온지라 배가 조금 찼지만, 맛있게 먹는 그녀의 옆에서 나도 열심히 배에 집어 넣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하늘에 작은 불꽃이 솟아 올라 큰 소리와 함께 터져, 형형색색의 빛이 온 사방에 예쁘게 퍼져 나갔다. 불꽃놀이가 이제 막 시작 된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말 없이 불꽃이 여름 밤하늘을 수놓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조용한 공기 속에 불꽃이 하늘에서 터지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침묵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에 그녀의 목소리가 불쑥 깨고 들어왔다.
"내가 왜 불꽃놀이를 좋아하는지 알아?"
갑자기 내게 묻는 의도를 몰라 나는 대충 대답할 말을 찾고 있었다.
"불꽃이 예뻐서?"
그녀가 쿡쿡 소리 죽여 웃었다. 아무래도 정답이 아닌 모양이다. 곧 이어 그녀가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어딘가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맞아. 좀 더 살을 붙여서 얘기 하자면 불꽃이 하늘에서 터지는 모습을 동경하고 있는 거지."
그녀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 해서 나는 그저 그녀의 옆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만히 불꽃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폭죽이 하늘로 올라가 꽃을 피우고, 그 꽃은 정말 반짝거리고 아름답지만 금방 공중에서 없어져 버리잖아. 그래서 아, 나도 저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동경하게 되는 거야."
폭죽 처럼 짧고 화려하게 살고 싶다는 그녀에게서 보통의 어린 아이와 이질감이 들었다. 그녀가 이런 얘기를 마냥 가볍게 꺼낸 게 아닐 것이다. 이유가 뭔지 생각 할 수록 구체적인 답에 이르지는 못 했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등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조금 혼란스러워 하는 걸 알아 챈 모양인지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
"아, 역시 이해하기 어렵지? 괜찮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들어.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얘기 하지만 그녀의 몸이 조금 떨리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다시 침묵이 시작 되었다. 불꽃놀이도 슬슬 마무리 되가고 있었다. 불꽃놀이가 끝나면... 이 여름이 끝나면 그녀와도 이제 끝이겠지. 생각없이 지냈던 마을이지만 그래도 나름 정 들었던 이 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저려왔다. 나는 혼자 그런 적막함에 휩싸인 채 터지는 불꽃을 봤다.
"있잖아. 나 부탁이 하나 있어."
그녀가 하늘이 아니라 내 눈을 보며 말했다.
"키스 해보고 싶어."
내가 들은 게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내 귀를 몇 번이나 의심했다. 아마, 다른 말을 했는데 불꽃이 터지는 소리에 묻혀 왜곡이 됐으리라. 그렇다면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걸까? 어떤 말을 들었기에 살면서 처음으로 가슴이 평소보다 더 열심히 뜀박질을 하고 있는 걸까?
"뭐라고?"
"키스라는 거 한 번 해보고 싶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바다 같이 깊었다. 바다 처럼 순수하고, 거짓됨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가까이서 그녀의 눈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당혹스럽네...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어떻게..."
"그럼 눈을 감아 봐."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있는 건지 그냥 멋대로 눈을 감아보라고 했다. 나는 거절할 수 없는 이 분위기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뭔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내 입술 위에 포갰다.
"어때?"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놀랄 틈도 없었던 나는 두 눈이 동그래진 채 그녀의 얼굴을 봤다.
"잘 모르겠어."
"그럼 나도 해줘."
이번엔 그녀가 눈을 감았다. 나는 터지기 일보 직전인 심장을 움켜잡고 내 입술을 그녀의 입술로 천천히 가져갔다. 그녀에게 키스를 받는 거와 내가 직접 하는 건 또 차원이 달랐다. 나는 이렇게나 설레고 부끄러운데 그녀는 어땠을까? 나와 똑같은 기분이었을까?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그 어떤 일 보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조그맣고 부드러운 입술 위에 내 입술을 살짝 얹히다 싶이 했다. 그리고 그녀가 살며시 눈을 떴다. 나와 그녀의 거리가 숨 쉬면 코에 닿을 정도로 엄청 가까웠다.
"어때?"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나도 그걸론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녀가 내 입술을 찾았고, 나는 그녀의 입술에 내 온 몸을 맡겼다. 시간이 멈춘 듯 입을 맞추고 있는 우리의 머리 위에 아름다운 꽃이 한 송이, 두 송이 폈다.
꽃이 피는 하늘 아래서 우리는 그렇게 어리숙한 사랑을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