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잃은 건 한 순간이었다. 태수는 한 아파트의 경비를 맡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경비를 서던 중, 아파트에 화재가 났고 불은 삽시간에 크게 번져갔다. 태수 주민들의 안전한 대피를 위해 선택의 여지없이 화마 속에 뛰어들어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때문에 남자는 휴직서를 내고 병원에 입원하여 재활 치료에 집중했다. 그렇게 두세 달 뒤 퇴원 한 태수는 큰 무리 없이 아파트 경비직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 한 일이 갑에게 들이닥쳤다. 복귀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태수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억울할 대로 억울한 태수는 관리 소장에게 따져 물었더니 태수의 얼굴에 남은 화상 자국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감을 일으킨다는 주민 민원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태수의 가슴이 짓밟히는 기분이 들었다. 목숨 걸고 지켰는데 이렇게 칼 날이 되어서 돌아올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더 이상 일 할 마음도 들지 않아 남자는 군 소리 없이 꽤나 오랫동안 몸 담아왔던 경비직을 나왔다.
해고를 당한 후 직장을 구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스펙으로 경쟁하는 세상에 아파트 경비만이 다인 그의 경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면접을 보는 곳마다 떨어졌고 또 떨어졌다. 심지어 일반적인 서비스 직 아르바이트에서도 그런 얼굴로는 같이 일을 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태수를 받아주지 않았다. 얼굴에 남은 화상 자국이 원망스러웠다. 가능하다면 이 부분만 도려내고 싶었다. 태수의 마음에도 화상 자국처럼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남았다. 태수는 철저히 세상에서 배척된 존재가 되었고, 그건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무거운 얼굴로 이혼 서류장을 내밀었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태수의 옆에서 살기가 힘들다는 게 아내의 입장이었다. 태수는 떠나고 싶어 하는 아내를 잡을 힘 조차 없었다. 힘들 때 떠나버리는 아내가 지독히도 미웠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 건 바로 자신이었다. 아내와 이혼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바로 태수가 일 하던 아파트에서 난 화재의 원인이 남자라는 소문이었다. 말인 즉 태수가 아파트에 불을 냈다는 것이다. 동네 주민들의 시선이 따가워졌다는 걸 태수는 느끼고 있었다. 그 불 내가 낸 게 아니다. 원인 모를 사고였다. 나는 목숨을 다 해 아파트 주민들을 대피시켰을 뿐이다.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여기에 그의 편은 없었다. 태수는 사람들의 눈초리와 수군거리는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이사 갈 것을 결심했다. 이 모든 게 순식간이었다. 불은 태수의 직장과 가정과 자존감까지 남김없이 태워버렸고, 때문에 삶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만 갔다.
세월이 흘러 태수는 한 닭발집 배달원으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배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하는 일인데 굳이 벗지 않고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좋았다. 예전보다 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태수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갔다. 어느 날 밤이었다. 한 아파트 105동에서 주문이 한 건 들어와 평소와 똑같이 검은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갔다. 늦은 밤 시간이라 그런지 아파트의 불빛이 대부분 꺼져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음산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진 태수는 얼른 배달하고 와야겠다고 중얼거리며 닭발을 들고 105동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수를 누른 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길 기다렸다. 뭔 놈에 아파트가 엘리베이터 문 닫는 버튼이 없냐고 불평불만을 씨부렁거릴 때쯤 문이 닫혔다. 그러나 닫히자마자 문이 다시 열리더니 고개를 푹 숙인 남자 한 명이 슬그머니 들어왔다. 검은 후드를 쓰고 있어 고개를 들지 않으면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였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검은 후드의 남자와 태수 사이에서 불편한 공기가 흘렀다. 그 공기는 태수의 숨통을 죄어오는 기분이 들 만큼 굉장히 불편했다. 검은 후드의 남자는 층을 올라가는 동안 일체 움직임이 없었다. 그저 고개만 푹 숙인 채 수상한 기운을 내뿜으며 가만히 서있었다. 엘리베이터가 8층을 알리며 멈춰 서자 태수는 무언가에 도망치듯이 내렸다. 소름이 끼치는 건 그 남자는 태수가 내리고 문이 닫힐 때 까지도 미동이 없었다는 점이다. 뭔, 저런 사람이 다 있나 하면서 태수는 주문을 한 집의 벨을 눌렀다. 그런데 벨을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혹시 고장이라도 난 건가 몇 번이고 벨을 눌러봐도 안 되길래 손으로 두드리려던 참에 문이 벌컥 열렸다.
"누구세요?"
호리호리한 체형에 키 큰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얼굴은 보통 사람에 몇 배로 하얘서 지나치게 창백하다는 느낌을 줬다. 꼭 병에 걸려 아픈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닭발 배달 왔습니다. 주문한 곳이 여기인데..."
"아, 맞아요."
창백한 남자가 히죽 웃으며 닭발을 건네받았다. 남자는 현금을 주고 거스름 돈을 주려고 할 때 등 뒤에서 무언가 이상한 비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남자는 심상치 않은 느낌에 뒤로 돌아봤다.
그때, 온몸이 불로 휩싸인 여자가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태수는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방금 자신이 본 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숨 막힐 듯한 두려움이 태수의 몸을 집어삼켰다. 자살인가? 아님 누구에 의한 살인인가? 태수는 머리가 아찔해졌다. 살인이 맞다면 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검은 후드의 사내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조금 전까지 살인마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다는 얘기인가? 서서히 체온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헬멧 속 머리에서는 이미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태수는 조심스럽게 아래를 내다봤다. 그런데 분명히 있어야 할 여자의 시체가 온데간데없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태수의 머리로는 계산이 되지 않았다. 살인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렇게 빨리 시체가 처리될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자살이라고 하기에는 시체가 있어야 할 자리가 너무나도 말끔했다. 그럼 어떻게 된 것인가?
"무슨 일 있어요?"
창백한 남자가 또 히죽 웃으며 태수에게 물었다.
"방금... 사람이 떨어진 걸 보고도 묻는 겁니까?"
"사람이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분명히 사람이 떨어졌다니까! 그것도 불에 탄 채로..."
"사람은커녕 비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상하네... 거스름돈은 그냥 가지세요 아저씨. 다음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니세요."
창백한 남자는 끝까지 히죽 웃는 얼굴로 태수를 상대하다가 문을 닫고 사라졌다. 태수는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의 태도에 화가 났다. 기분 나쁘게 웃는 것부터 조곤조곤 사람을 깔보는 듯한 말투까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태수는 한동안 그 남자의 집 앞을 노려봤다.
어느 날 밤, 닭발 세트 하나 주문이 들어와 태수는 배달을 가기 위해 오토바이 헬멧을 썼다. 사장은 태수의 오토바이에 닭발을 실으며 말했다.
"OO아파트 105동 801호야."
태수는 사장의 말에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태수는 헬멧을 쓰다 말고 사장에게 말했다.
"거기, 되게 자주 시키네요?"
"단골이니까 그렇지. 조심해서 얼른 갔다 와."
사장은 서비스도 같이 넣었다며 태수의 등을 토닥여줬다. 태수는 입에서 쓴맛이 나는 거 같은 기분을 맛보며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10분 정도 거리를 달려 아파트에 도착한 태수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105동 8층을 올려다봤다. 그 날 본 건 헛것이겠지 하고 자가 최면을 건 뒤 105동으로 들어갔다. 태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역시나 닫는 버튼이 없었고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태수는 저번과는 다르게 성질을 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안절부절못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한층씩 올라가는 게 느껴지고 나서야 태수는 마음을 놓았다. 그 날처럼 검은 후드의 남자가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8층에서 내린 태수는 801호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역시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한 번 더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집주인은 자기 집 벨이 고장 난 걸 아는지 모르는지 도통 바꿀 생각을 안 한다고 태수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문을 두드렸다.
"닭발 배달 왔습니다."
문을 두드려도 집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태수는 아까보다 더 세게 두드리며 있는 힘껏 불렀다.
"안 계십니까? 닭발 배달 왔습니다!"
집주인이 잠시 이 근처에 뭔가를 사러 간 건지 아닌지 알 길이 없어 태수는 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뭣보다 배달을 시켜놓고 집을 비우는 거부터가 이상하지 않은가? 태수는 욕을 내뱉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소리가 태수의 귀에 들렸다. 집주인이 온 건가 예상했다. 만약 집주인이라면 그 창백한 얼굴을 때려주고 싶다고 태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건 집주인이 아니라 검은 후드를 눌러쓴 남자였으니까. 8층에서 내려 801호 쪽으로 걸어오는 검은 후드의 남자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저번은 불쾌한 것이 전부였다면 이번엔 살기가 느껴졌다. 분위기에 압도당한 태수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뒷걸음질을 하고 있었다. 검은 후드의 걸음은 점점 빨라져 이제는 뛰어오기 시작했다. 검은 팔을 앞으로 뻗고 뛰어오는 모양새가 영화에 나오는 좀비와 흡사했다. 태수는 들고 있던 닭발을 냅다 던지고 도망쳤다. 태수는 어디까지 쫓아오나 싶어 뒤로 돌아봤는데 그때 검은 후드가 벗겨진 남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남자는...
화상에 일그러진 피부, 흉터를 애처롭게 가리고 있는 듯 덥수룩한 머리칼. 그것은 꼭 태수의 얼굴과 닮아있었다. 아니 똑같았다. 태수는 지금 자신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인지, 아니면 정말 우연히 자기랑 똑 닮은 사람인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복도의 끝에서 한 명의 사람이 눈에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집주인인 창백한 남자였다. 멀리서 봐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과 유난히 하얀 피부 덕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태수는 본능적으로 살려 달라고, 도와 달라고 소리쳤지만 창백한 남자는 히죽 웃으며 칼을 들고 서있을 뿐이었다. 설마 검은 후드 남자와 같은 편인 걸까? 태수는 결국 길이 막혀 창백한 남자와 자신과 똑같은 남자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처음부터 자신이 일 하던 아파트에서 난 화재의 뛰어든 것부터? 아니면 닭발집 배달 일을 시작한 것부터? 태수는 왜 이런 일들이 자신한테만 일어나는지 환멸이 나 미칠 지경이었다. 세상이 증오스러웠다. 자신을 천대 시 하는 사람들이 죽도록 미웠다. 바닥에 바닥을 뚫고 떨어진 자신도 싫었고, 이렇게 만든 모든 것들이 혐오스러웠다. 태수는 안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창백한 남자와 검은 후드 남자가 태수와의 간격을 좁혀나갔다. 태수는 이제는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주머니에서 선물 받은 듀퐁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그리고 가스 배관을 향해 불을 가져다 댔다.
"이 개 같은 세상 모조리 다 불 태워버릴 거야!"
불은 가스 배관을 타고 위아래로 점점 더 크게 번져 나갔다. 가스 배관이 터지고 나서 불의 위력은 더 강해졌다. 태수가 저번에 봤던 불 보다 더 잔인하고 혹독했다. 여기서 놀라운 건 검은 후드 남자와 창백한 남자가 언제 거기 있었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태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번엔 왜 또 없는 것일까? 나는 지금 뭘 겪고 있는 것일까? 마약을 한 거 같이 어지러웠고 현실과 환상을 왔다갔다 하는 느낌이었다. 태수는 정신이 혼미해져 갈 때쯤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몸에 불이 감긴 여자가 위에서 떨어지는 걸 봤다. 저번에 본 그 여자였다. 그렇게 태수는 거대한 불에 삼켜진 채 의식을 잃었다.
늦은 밤, 태수는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잠에서 깼다. 악몽이다. 예전부터 악몽은 자주 꿨지만 이번 건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꿈에서 태수는 오늘 본 검은 후드의 남자에게 쫓기고 있었고, 그 남자는 사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창백한 남자도 똑같이 한 파였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 아파트를 불태웠다. 태수의 손에 남은 감각이 생생했다. 정말로 불을 지르고 온 것 같은 감각이었다. 태수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신음하는 소리를 냈다. 몸에 불길이 휩싸인 채 떨어지고 있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을.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는 여자의 눈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을 볼 것만 같아 오한이 돋았다. 불에 탄 여자를 자신이 죽이지도 않았는데도 죽인 것 같아 괜히 손이 다 떨렸다. 태수는 애써 헛것을 본 거겠지 하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사람이 떨어진 자리에 피 한 방울도 없이 깔끔한 건 태수가 생각하기에도 성립될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생각하고, 때문에 최대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는데 그게 말처럼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이 정말 환영이었든, 실체였든 태수에게 치명적인 자극을 준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태수는 거실로 나와 냉장고를 열어 물을 한 잔 따라서 마셨다. 시원한 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 뱃속의 열을 식혔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봤다. 불을 지르던 자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수척해진 한 남자의 얼굴이 생기 없이 비치고 있었다.
다음 날 오후, 닭발 주문이 들어와 태수는 배달을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늘 그랬듯 오토바이 헬멧과 장갑이면 준비 끝이었다.
"OO아파트 105동 801호야."
태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왜 하필 또 OO아파트 105동 801호인 걸까? 그의 발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혹시 어젯밤에 꾼 꿈이 예지몽이 아닌지 의심되기까지 했다.
"단골인가 봐요?"
"단골은 무슨... 얼른 갔다 오기나 해."
전부터 가게 사정이 좋지 않아 사장의 성격이 많이 날카로워졌다는 건 직원이라면 다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태수는 사장에게서 받아 든 닭발을 오토바이에 싣고 시동을 걸었다. 태수에게 최근 OO아파트만큼 가기 싫은 곳은 또 없지만 배달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갈 수밖에 없었다. 오토바이를 달리면서 맞는 바람이 그다지 상쾌하지 않았다. 미적지근 하고 찝찝한 바람이 태수의 몸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OO아파트 105동에 도착한 태수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밤에 보나, 낮에 보나 기분 나쁜 건 달라지지 않았다. 정말 신기한 아파트다. 이렇게 한결 같이 음침한 건 여기 말곤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태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듀퐁 라이터를 만지작 거리며 꿈에서 자신이 아파트를 불 지르는 장면을 재생시켰다. 비록 꿈이지만 손 끝에 남는 방화의 감각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자신을 무시하고 배척하던 세상을 향해 지른 불이라고 생각하니 그거만큼 통쾌한 건 없었다. 이윽고 태수는 이렇게나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소름이 끼쳤다.
'세상이 아무리 썩어 빠졌다 한들 나까지 썩어 빠질 수는 없지.'
태수는 한 손엔 닭발, 나머지 한 손은 여전히 주머니에 든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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