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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그러모은 곳...
소설

고해성사

by #시기 2019. 12. 19.

 이래도 될지 모르겠지만 너를 위해서 작고 알량한 글 한 편을 쓴다. 사실 이 글이 너를 위해서 쓰는 건지, 나를 위해서 쓰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정말 내 마음 편하자고 쓰는 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네게 마지막으로 이 글을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이기적인 마음을 조금 품어본다. 무작정 미안하다고만 하지는 않겠다. 여기에 우리 이야기를 담아 보려고 하니까.

 돌이켜 보면 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가진 거 없고, 볼품없는 나를 사랑으로 받아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는 충분히 대단하니까. 차가운 바닥에 깡통처럼 굴러다니던 나를 따뜻하게 품어 준 것에 진심으로 고마웠다. 너의 그 어느 가정집의 안방과 같은 가슴에 나는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걸지도 모른다. 내가 내뱉는 투정의 크기가 어떠하든 너는 싫은 소리 하나 없이 그 자체로 모두 받아줬다. 그래서 나는 힘들 때마다 너를 찾았고, 찾았고, 또 찾았다. 나는 네게 무모하게 굴었다. 가만히 늘 있는 자리에서 나의 모든 걸 받아주고 있던 너를 어느샌가 멀리 하기 시작했고, 여기 까지라는 말로 너와 내 마음에 마침표를 찍었다.

 끝인 줄 알았다. 끝인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나는 너를 다시 찾고 있었다. 술을 마셔도 담배를 펴도 달래지지 않는 마음. 일부러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너의 빈자리는 이미 대체 불가하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차려버렸다. 이렇게 망가진 나를 너는 스스럼없이 또 손을 잡아줬다. 하지만 이번에도 싫증의 그늘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없었나 보다. 결국 나는 너를 버리게 됐고, 먼 나중인 지금에야 뒤늦게 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까.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처럼 눈짓 한 번에도 가슴 떨리던 사랑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너의 믿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겨서 미안하다. 바다 같이 넓은 줄로만 알았던 너의 가슴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작고 여리다는 걸 이제야 알아채서 미안하다.

언제 어디선가 네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나를 기억에 잊었다 해도

나를 너의 감정만 갉아먹은 놈이라 원망해도

나를 용서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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