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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녀의 구두

by #시기 2019. 12. 2.

여자는 이번에 새로 산 구두를 신고 꽤 많이 걸어 다녔다.
새 구두라 발이 많이 아파도 참고 걸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걸어도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조여와서 결국 버스를 타기로 했다.
늦은 시간의 한적한 버스는 여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다.
몸이 많이 지쳐서일까 창 밖으로 비춰지는 도시의 불빛이 차갑게만 느껴졌다.
좌석에 몸을 기댄 채 자신의 구두를 보자 괜히 울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구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분명 다시 봐도 예뻤다.
하지만 이 구두도 저번 구두들과 같이 낡아질 것이고 또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자신의 오래 된 옛 연인이 떠올랐다.
돌이켜 보면 여자에게 있어서 사랑은 그런 거 같다. 사랑은 구두와 다름 없이 처음에는 아프다가 시간이 흘러 익숙해지고 낡아지기를 거쳐 결국 서로 눈길 조차 안 주기 마련이다. 여자의 사랑은 항상 그렇게 끝이 났다.
버스에서 내려 아픈 발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여자의 집 앞에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낯설지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이 봐서 눈에 익은 실루엣이었다.
남자는 여자가 온 걸 눈치 챘는지 이 쪽으로 걸어 오고 있었다.
오래 전 남자에게 처음 선물로 받은, 여자가 가장 아꼈던 구두를 손에 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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